서울, 경기외 사찰

20100314 1. 화순 운주사 - 이게 정말 불교 유적일까?

gotemple 2010. 3. 15. 07:16

일요일에 운주사를 다녀왔다.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고 사진 찍고 글을 올리던 화순에 있는 '그 운주사'이다.

12세기에 만들어졌을 거라는 고고학적 추측 이외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어 온갖까지 설이 난무하는 그 운주사이다.

 

주차장에서 버스에서 내리면서 주차장에 차들이 많지 않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걸어 들어 갔다.

 

제일 처음 만난 5층 석탑 그리고 9층 석탑, 사진을 보며 상상했던 것 보다 무척 큰 탑이었다. '생각보다 크다'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또한 입구에 있는 불상군도 생각했던 것보다 2배 이상 컸다.

 

누가 왜 들었는지 모르고 사회의 주류들 한테 후원을 받으면서 만들어진 석굴암이나 다른 대규모 사찰이 아닌 '민초'들이 세운 탑과 부처상이라는 선입견이 '작을 거라는' 예측을 만들었나보다. 돈없고 힘없는 사람들이 설마 대규모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나보다.

 

전통적인 불탑 문양에서 벗어난 문양들, 기하학적인 요소가 무엇을 뜻하는 지 정말로 강한 호기심을 일으킨다. 우리나라의 탑 중에서는 전래를 찾아 볼수 없는 원형 탑 앞에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오히려 현대의 어떤 조각가의 작품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넓은 평지나 산꼭대기(가끔 산 꼭대기에 세운 탑도 있기는 하다.) 놔두고 바위로 된 비탈에 바위를 파서 고정 시키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탑을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의 주장대로 정말 별자리를 구현하고 싶었나?

 

등을 맞댄 부처상은 더 괴기하다. 한 부처님은 북쪽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북쪽을 바라보는 부처상은 아마도 우리나라에는 없을 듯하다.

 

그 누가 만들었던지 기존 불교 조형 전통을 지키려는 의도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친 조각 공원 같다.

 

절 전체를 구경할 수 있는 공사바위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아련하다. 몇 백년전 누군가가 여기에 서서 자신들의 꿈을 설계했을 것이다. 당신들은 누구세요? 무슨 꿈을 꾸셨나요?

 

허접한 체력에도 불구하고 구경하겠다는 일념으로 와불을 보러 올라가는데 웃고 있는 '시위불'을 먼저 만났다. '올라 오는데 힘썼다. 여기를 올라 올 수 있는 너는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듯 빙긋이 웃고 있다. '네가 원하는것을 찾길 바래.' 말 하는 듯 빙긋이 웃고 있다. 입체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밋밋한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이런 미소 띤 부처상이 얼마나 될까? 시위불은 정말 부처상인가?

 

와불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컸다. 운주사에 있는 부처상 중에 제일 큰 것 같다. 누워 있는 부처의 얼굴은 그 표정이 깊다. 시위불에서 느꼈던 '명랑, 발랄'의 기분은 와불을 보면서 가라 앉는다. 눈을 뜨고 있지만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 불상이 만약 서 있는 불상이 되었다면 눈을 내려깔고 자신의 내부에 침잠한 불상이 되었을 것 같다.

 

또 북두칠성을 구현한 둥근 돌들은 무엇인가? 마치 요즘의 기계로 깎은 것처럼 '엣지'가 살아 있다. 돌의 크기와 살아있는 엣지를 봐서는 그저 심심해서 늘어 놓은 돌은 아니다.

 

길을 내려 오면서 내가 사진만 보았을 때 작은 석탑과 불상이라고 생각했을까하는 의문을 곰곰히 되씹어 보았다.

 

 

석탑들이 작을 거라고 상상한 것은 주위에 그 크기를 비교할 다른 건축물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탑 주위에 건물이 있기에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부처상들이 작을 거라고 생각한 이유는 아마도 부처상들의 모양 때문일 것이다. 둥근 얼굴에 목이 어깨에 거의 붙은 모습들-완전한 입체 모양이 아니라 부조에 가까운 입체형태라 안전을 위해서 이런 형태가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둥근 얼굴과 어깨에 붙은 머리는 전형적인 어린 아이들의 이미지이고 어린 아이는 작다라는 관념이 겹친 탓일 게다.

 

누군가가 첩첩 산골에 수 많은 부처상과 석탑들을 세웠다. 글로 기록을 충분히 남길 수 있는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글 하나 남기지 않았다. 부처상과 불탑이지만 당시의 전통을 철저히 무시한 형태로 자신들만의 작품을 남겼다.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꿈을 꾼 사람들이거나 전통에 벗어 난 조형물이 비난 받는 것을 두려워한 사람들이 이 정원을 남겼을 것이다. 아니면 누구에 의해 철저히 잊혀지도록 지워졌을 것이다. 가끔 적들에게 역사에서의 지워짐이라는 철저한 복수를 하는사람들이 있다(음모설이 난무하는 역사 추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다.).

 

후대 사람들이 단지 부처상이라는 이유로 다시 전통적인 사찰을 짓고 전통적인 불교 예식을 행하고 있다.

 

꿈을 꾼 자들은 자신들의 꿈이 자신들이 피하려 했던 전통 불교에 납치 당했다고 생각하지나 않을까? (가끔 세계 문화사를 보면 역사를 도난 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

 

 

석탑과 불상에 비해 최근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점 때문에 역사 탐방하는 우리 팀에 철저히(?) 무시당한 대웅전과 요사채를 슬쩍 둘러 보았다. 요사채는 비록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한옥의 고적함과 장독대의 아련함을 뿜고 있었다. 시간이 정지된 곳이다.

 

 

예로 부터 종교 예술품이란 대부분 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강요'한다-거룩한 감정(성모상), 겁을 주어 착하게 살려는 마음을 일어 나게 하려는 감정(지옥도등).

그런 감정이 일어나도록 종교화를 그리는 화가들은 투철한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하거나 고도의 '기술' 연마에 힘썼다. 그 와중에 예술품들의 질적 향상이 이루어져 왔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작가들의 자신만의 감정을 표현해 왔고 요즘 현대 작가들은 보는 사람들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우연에 의한 작품으로 자신의 감정 마저도 배제하는 경우도 있다.

 

운주사의 불상들은 어느 쪽에 속할까? 세련되고 정제된 기술의 표현이 아니다. 석굴암을 조성했던 사람들의 후예가 아니다. 석굴암보다 시대는 훨씬 후대이지만 조형미나 예술성을 훨씬 떨어진다. 12세기 고려 시대, 별로 편안하지 않은 이 첩첩 산중의 험악한 환경에서도 그들은 이 '명랑, 발랄'한 작품을 남길 정도로 행복했을까? 아니면 행복하기를 기원했을까?

 

 

http://www.unjusa.org

 

 

운주사, 가을비-르클레지오


흩날리는 부드러운 가을비 속에

꿈꾸는 눈 하늘을 관조하는

와불

구전에 따르면, 애초에 세 분이었으나 한 분 시위불이

홀연 절벽 쪽으로 일어나 가셨다

아직도 등을 땅에 대고 누운 두 분 부처는

일어날 날을 기다리신다

그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거란다.


서울거리에

젊은이들, 아가씨들

시간을 다투고 초를 다툰다.

무언가를 사고팔고,

만들고, 창조하고, 찾는다.

운주사의

가을 단풍 속에

구름 도량을 바치고 계시는

두 분 부처님을

아뜩 잊은 채


찾고 달리고

붙잡고 쓸어간다

로아*의 형상을 한 돌부처님

당신(堂神)을 닮은 부처님

뜬 눈으로 새는 밤

동대문의 네온 불이

숲의 잔가지들 만큼이나

휘황한 상점의 꿈을 깨실까?


세상 끝의

바다 끝의

분단국

겁에 질려

분별을 잃은 듯한 나라


무엇인가을 사고 파는

점을 치고

밤거리를 쏘다닌다

서울이 불 밝힌 편주(片舟)처럼 떠 다닐때


고요하고 정겨운

인사동의 아침

광주 예술인의 거리

청소부들은 거리의 널린 판지들을 거두고

아직도 문이 열린 카페에는 두 연인이 손을 놓지 못한다.


살며, 행동하며

맛보고 방관하고 오감을 빠져들게 한다

번데기 익는 냄새

김치

우동 미역국

고사리 나물

얼얼한 해파리냉채

심연에서 솟아난 이 땅엔

에테르 맛이 난다.


바라고 꿈을 꾸고 살며

글을 쓴다.


세상의 한 끝에서

사막의 한 끝에서

조명탄이 작열하며 갓 시작한 밤을 사른다.


갈망하고 표류하고

앞지른다

간판에 불이 들어 온다

숲의 부러진 나뭇가지들 처럼

나는 여기서 휘도는 바람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 속으로 회색의 아이들을 눕히는 바람에 대해

매운 사막의 관위로


기다리고 웃고 희망을 가지고

사랑하고 사랑하다

서울의 고궁에

신들처럼 포동포동한

아이들의 눈매는 붓끝으로 찍은 듯하다


기다리고 나이를 먹고 비가 온다

운주사에 내리는 가랑비는

가을의 단풍잎으로 구르고

길게 바다로 흘러

시원의 원천으로 돌아간다.

두 와불의 얼굴은 이 비로 씻겨

눈은 하늘을 응시한다

한 세기가 지나는 것은 구름 하나가 지나는 것

부처님들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꿈꾼다

눈을 뜨고 잠을 청한다

세상이 벌써 전율한다.


르 클레지오 2001년 10월 22일


*로아의 신

곧은 콧대에 반원형 눈썹을 한 긴 얼굴의 이 아프리카신

아이티를 거쳐서 한국 불교 평상심속에서도 발견된다.


프랑스의 대표소설가로 200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지한파로 알려진 그의 대표작은 조서,사막,혁명 등이 있다.

한국 독자엔 황금물고기로 잘 알려졌다.


저자가 2001년 대산문화재단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운주사를 찾았다

운주사(雲住寺)는 전남 화순에 있는 절이다

2001년 이맘때 운주사에 비가 내렸나 보다.

가을비가 내리는 산사을 걷으며

그 곳에서 천불탑의 경이로운 전설을 듣고 시를 남긴다.

바로 운주사, 가을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