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기외 사찰

20091101 2. 소수서원

gotemple 2009. 11. 5. 07:34

점심 식사 후 학교 다니던 시절 열심히 외웠던 ‘소수서원’에 갔다.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 철폐 정책 때에도 살아남았던 유명한 서원으로 주자학을 중국에서 도입한 ‘안향’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다.

청렴을 모토로 삼았던 ‘선비 정신’에 맞게 서원은 장식이 많지 않고 간결하고 정숙한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옛 사람들은 키가 작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생들의 기숙사는 매우 작아 보였다. 서원의 건축물보다도 서원이 위치한 곳의 소나무 숲이 너무 좋았다. 이런 곳에서 공부하면 정신이 맑아져서 정말 공부가 절로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진 소나무와 용문사 정도의 오랜 은행나무가 품어내는 고풍스런 분위기는 정말 아름다웠다.

그 동안 열심히 다녔던 사찰에 비해 서원은 간결하고 절제의 한옥미를 잘 보여 주고 있었다. 도서관으로 쓰였던 건물도 너무 앙증 맞았다.

서원을 돌아다니며 ‘바람과 함께 사라진 문명’에 대해 생각했다. 조선시대 그 많은 똑똑한 선비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목숨 바쳐 지키려 했던 주자학 또는 성리학에 대해 생각했다. 유학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특히 꽃을 피웠다는 성리학. 중국이나 일본에서 조차 성인으로 추앙받는 퇴계 이황의 사상... 나는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 모른다. 아마도 그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국사 시간에 열심히 외웠던 내용마저 솔직히 생각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서원이나 사찰이나 모두 과거의 남성위주 엘리트 주의의 산물이다. 사찰에서는 ‘스님’이라는 종교 계급의 사람들이 정신문화를 독점하고 있었고 서원에서는 ‘선비’라는 남자 엘리트 집단이 학문을 독점했다. 조선이 망하고 급격한 서구화의 과정에서 불교문화는 살아남았고 서원은 이제 건물만 남았다. 아마도 서원에서 일 년에 몇 번씩 제사는 지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교육 기관으로서의 기능은 사라진지 오래다.

불교가 살아남은 이유는 조선시대에도 어차피 지배계급이 아니었으니 조선이 망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었을까? 서원은 조선의 통치이념이었기에 나라가 망하자 생존 능력을 잃어버린 것일까? 조선시대 그 많던 한자 문화가 사장되어 가는 것이 안타깝다. 비록 한자를 잘 몰라 해독능력은 없지만 그 많은 인재들이 이룩했던 찬란한 문화가 어딘엔가 사장되어 있으리라. 사라진지 오래된 고대 문명이 아닌 불과 100여년 전에 사라진 문명이기에 너무나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