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영주 부석사에 다녀왔다. 부석사는 이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가이드선생님의 추천 때문에 몇달 전부터 계획을 잡고 있었는데 일주일 전에 모신문에서 가을 단풍여행 추천지로 기사가 난 것을 보는 순간 ‘사람 많겠네.’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어쨌든 새벽 7시에 모여 버스를 타고 영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나누어준 프린트물 열심히 읽고 강의를 들은 후 ‘또 잊어 버렸냐?’ 선생님의 꾸중을 또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부석사에 도착했다. 주차장부터 붐비기 시작했다. 마치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에서처럼 밀려올라 가는 형국이다. 일주문을 지나 올라 가는 비탈길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떨어진 은행잎은 관광객들의 발길에 밟혔음에도 불구하고 밝은 노란빛을 유지하고 있다. 노란 색종이를 뿌려 놓은 듯했다. 아쉽게도 이 아름다운 길을 사람들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부석사의 많은 계단은 불교적 천국관을 반영한 것이라 108개를 다 올라야 그 유명한 무량수전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강의 시간에 미리 들었지만 힘들긴 힘들었다. 천국가기가 어디 쉽겠냐는 자조적인 심정으로 오르기는 하지만 혹시 옆에 차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차도가 없는지 흘깃 거리며 올라갔다. (모든 절에는 공식적인 계단 길 외에도 차가 올라갈 수 있는 옆길이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들은 쉽게 본전을 보여 주지 않는다. 일주문 근처에서는 당연히 보이지 않고 사천왕문을 지나도 보이지 않는다. 사찰이 위치한 지형(경사고도)를 이용하거나 길을 꺽거나 평지에 가까운 지형인 경우 누각이나 종각을 이용하여 본전을 감추고 있다. 부석사는 이 모든 방법을 다 이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다닌 그 어느 절보다 지형이 가파라서 높은 계단 경사 탓에 범종루나 안양루도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 많은 계단을 올라가면 이번에는범종루가 범종루를 지나면 이번에는 안양루라는 누각이 본전인 ‘무량수전;을 가리고 있다. 참 그 유명하다는 무량수전을 한번 보기 힘들다...... 사천왕문을 지나고 범종루을 지나고 안양루, 무량수전까지 전각들의 배치는 직선이 아니다. 조금씩 각도를 꺽어서 무량수전 바로 앞의 안양루는 비스듬이 무량수전을 가리고 있다. 직선과 직각, 대칭과 황금비율에 집착하는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아무 생각없이 배열해 놓은 것 같아서 이런 배치가 불편한 마음을 일으킨다. 가이드선생님를 따라 약간 동쪽으로 이동해서 바라보니 무량수전과 그 앞에 있는 안양루가 완벽하게 배치가 되었다. 큰 직사각형 안에 안양루 지붕의 작은 직사각형이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이렇게 숨겨 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량수전은 한옥의 시각에서 보면 여러 가지 멋들어진 기교가 다 들어 있다고 한다. 각 기둥의 가운데 부분이 불룩한 그 유명한 ‘배흘림 기둥’(학교 다닐 때의 왕족보여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외곽 기둥의 높이가 가운데 기둥보다 높은 ‘귀솟음’ 기법, 각 기둥들이 중앙을 향해 약간씩 기울어져 있는 ‘안쏠림’ 등의 기법으로 만들어져 한옥의 교과서라 불릴만 하다. 무량수전의 내부 역시 다른 절과는 많이 달랐다. 보통 절들의 본전의 부처는 대부분 전각의 문을 바라보고 있다. 무량수전의 부처는 서쪽 벽에 위치하여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가이드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동쪽의 적인 일본을 견제하기 위함이란다. 또한 대부분의 절들에서는 본전의 천정이 있어서 건물의 대들보를 가리고 있다.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의 천정에 예쁜 꽃 그림을 그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무량수전에는 천정이 없이 그냥 대들보가 노출되어 있다. 아마도 고려 시대의 건물이라서 그런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량수전 안은 많은 관광객들과 참배객들로 무척 붐볐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들어가 보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공식 예불 시간은 아니지만 전각 안에는 많은 불교 신자들이 절을 하거나 기도를 하고 있다. 관광객들 때문에 어수선한 분위기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관람객들 또한 절하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은 하지만 구경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혼란 속에서도 조용하고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는 듯하다. 700년이나 된 이 목조건물이 아직도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박물관의 유리창에 갇힌 유적이 아닌 현재에도 사용된다는 사실이 기쁘다. 그러나 많은 관광객들 때문에 모처럼 카메라를 가지고 갔는데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내 사진에 걸리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짜증이 났지만 나 또한 다른 사람들 사진을 망치는 요인이 되겠지...... 부석사는 절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가을이라는 계절적인 분위기가 겹쳐서 최고의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무량수전 앞 마당에서 내려다 보는 세상은 정말 아름답다. 부석사를 지었다는 의상대사가 1300여년 전에 보았던 풍경, 아니면 전국을 방랑하다 이곳에 들려 멋진 시 한수를 남긴 김삿갓이 보았던 풍경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걸까?
부석사(浮石寺) = 김삿갓(金炳淵)1807~1863 = 平生未暇踏名區(평생미가답명처)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白首今登安養樓(백수금등안양루) 흰머리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江山似畵東南列(강산사화동남열)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天地如萍日夜浮(천지여평일야부) 천지는 부평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風塵萬事忽忽馬(풍진만사홀홀마) 지나간 모든 일이 말타고 달려온 듯 宇宙一身泛泛鳧(우주일신범범부)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염치네 百年幾得看勝景(백년기득간승경) 백년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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