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2010.11.7) 고창 선운사와 도솔암에 다녀왔다. 오는 길에 근처에 있던 미당 서정주 시인의 기념관도 들렀다.
단풍이 한창인 계절이라 선운사 가는 길과 도솔암 가는 길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선운사에서 도솔암으로 올라가는 길은 정말 아름다운 길이다. 곱게 물든 투명한 단풍잎을 통해 햇살이 빛나고 있었다.
수면 가까이 축 처진 단풍잎은 물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있는 듯했다.
먼저 도솔암의 대웅전.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보존이 본전이고 오른쪽에는 아주 정감 가는 요사채가 있다. 요사채 처마 밑에는 백제 때부터 내려 왔다는 기와로 만든 도깨비상이 반갑다. 이렇게 높은 곳에 위풍당당 서 있는 요사채가 멋있다.
극락보존을 지나 좀더 올라가니 마애불이 보인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그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었는데 생각보다 꽤 컸다. 우리나라 유적지마다 이야기가 없는 곳이 어디 있으랴마는 이 마애불에는 동학의 이야기가 겹쳐졌다. 부처님 명치 쯤에 있는 복장을 열면 조선이 망한다는 전설 때문에 무엇인가 그럴듯한 구실이 필요했던 동학에 의해 훼손당했다.
마애불은 눈꼬리가 살짝 찢어진 것이 약간 위압감을 준다.
마애불을 보고 오른쪽으로 가파르게 만들어진 108계단을 올라가니 드디어 그 유명한 도솔암 내원궁이 보인다. 내원궁은 TV에서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습으로 많이 본 전각이다.
선운사의 대분의 전각과 도솔암 극락보존, 요사채가 모두 맞배지붕인데 반해 내원궁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높은 바위 위에 앙증맞게 앉아 있는 팔작지붕의 전각이 너무 귀엽다. 그 앞에 옆으로 늘어진 소나무가 풍취를 더 한다. 왼쪽을 바라보니 도솔산 천마봉이 보인다.
전각 안을 들여다 보니 지장보살좌상이 보인다. 선운사에는 세 분의 지장 보살을 모셨는데 제일 위에 있는 지장보살이 이 내원궁이 있는 분이다. 가이드 선생님께서 세분의 지장 보살을 보고 자신과 코드가 맞는 분을 고르라고 미리 숙제를 내셨다.
내원궁의 지장 보살좌상은 특이하게도 손에 법륜을 쥐고 있다. 누구 말대로 ‘경기고등학교 나온 듯한 인상’의 지상보살이다. 이른바 40대 ‘엄친아’ 스타일이다. 후불탱화는 그림이 아닌 나무 부조로 되어 있는데 탱화에 있는 지장보살은 손에 보주를 쥐고 있다. 좌상과 후불 탱화의 조성 시기가 다른 결과가 아닐 까 추측한다.
내원궁 안에는 스님이 독경을 하고 계신다. 그동안 사찰을 돌아다녔지만 일요일에 스님독경을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마도 기도도량으로 이름난 곳이라 늘 기도를 하는 모양이다.
도솔암에서 선운사로 내려 오는 길에 참당암에 들렸다. 도솔암과 도솔암 가는 길에 부쩍였던 사람들이 참당암에는 들리지 않는지 참당암 안마당은 그야말로 정적이 감돈다. 우리 일행 밖에 없다. 이런 정적이야 말로 우리가 절에 와서 만나기 바라는 것이 아닐까?
훵한 마당을 건너 쳐다보는 본전은 맞배 형식의 지붕이 높다. 암자라고 하나 웬만한 ‘사’자 붙은 절에 그 규모가 못하지 않다. 도솔암과 참당암에는 사천왕문이 없다. 지형이 기가 세 보이는 바위산으로 둘러 싸인 형국이라 그 바위산들이 사천왕문을 대신하기 때문이란다.
참당암에서 반드시 보아야 할 석조 지장보살을 보러 갔다. 대웅전 왼쪽 뒤에 있는 약사전에 봉안된 석조 지장보살상은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별로 느낌이 없었다. 약사전에 들어서서 그 얼굴을 보는데 무엇인가 느낌이 왔다. 내원궁 금동지장보살상에 비해서는 조형미는 떨어지지만 ‘느낌’이라는 것이 왔다. 물론 그 느낌은 수 초내로 사라졌지만 이렇게 투박하고 별 특징 없어 보이는 보살상이 정감을 느끼게 한다.
참당암 대웅전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우뚝’한 느낌을 주는 남성성을 느끼게 한다. 대웅전의 실제 크기보다 느낌상으로 느끼는 크기가 더 크다. 대웅전 안을 둘러보니 왼쪽 뒤쪽으로 매화 벽화가 보인다. 대웅전 안에 웬 매화 벽화(마치 신사임당이 그린 그림과 구도가 비슷하다.)가? 그것도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구석 위쪽에 그렸다. 누군가가 보아주길 바라면서 그렸는지 눈에 보이 질 않기를 바라면서 그렸는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 듬성듬성 흰 벽으로 남아 있는 대웅전 안 구석의 매화 그림은 의문이라는 여운을 남긴다.
참당암을 지나 선운사로 내려가는 길에 다시 들어서니 여전히 우측통행을 해야 할 지경으로 사람들이 많다.
2층 구조로 아래층은 사천왕문, 윗층은 종루라는 사천왕문을 들어서니 만세루가 시야를 가로 막는다. 그 유명한 만세루다. 사찰을 조성하고 남은목재로 맨 마지막에 세운 건물이라 기둥이나 서까래가 제각각이고 이어서 만든 루로 유명한 그 만세루이다.
나는 만세루의 형태도 놀라웠지만 그 위치도 놀라웠다. 많은 사찰들이 루를 사각형 마당의 한 변에 위치 시킨다. 그런데 선운사는 각 전각으로 둘러 싼 사각형 마당 한 가운데 만세루가 위치해서 만세루는 한 변이 아니라 가운데 점을 형성하고 있다. 보통 가운데 점은 탑이나 석등이 찍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의 책에서 보면 만세루 주위에 요사채가 있었다고 한다. 요사채가 없어져서 공간이 엉망이 되었다고 한탄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내가 보기에 마당 한가운데 있는 만세루도 보기 좋았다. 넓은 공간의 방점이랄까?
만세루에서는 사진 전시회와 함께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사람들이 뜸한 평일이라면 나도 한잔 마시면서 공간을 음미하고 싶었지만 우리에게 그런 여유가 없다.
만세전 앞에 서서 대웅보전을 보니 역시 우뚝 솟은 모양이다. 어떤 대웅전은 같은 맞배 지붕이라도 아래로 가라 앉은 모양새를 가지고 있는데 이 대웅전은 기지개를 펴듯 우뚝 솟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어떤 기술을 썻기에 그런 느낌을 줄까? 아마도 기둥과 지붕과의 비율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공포 부위의 길이?
대웅전 안을 돌아 보니 석가삼존불을 모셨다. 실내 그림들을 자세히 보니 이 대웅전 안에도 역시 불교회화와 관련이 적어 보이는 화조도가 그려져 있다. 빈 벽을 남기에는 썰렁하고 무엇인가로 채워야겠다는 압박감이 있었나 보다.
대웅전 왼쪽 영산전에 들렸다. 영산전에 모신 부처상과 전각의 크기가 조화롭지 못하다는 살명을 미리 들은 전각이다. 얼마나 조화가 맞지 않는지 궁금증을 일으킨다. 진짜 부처님 어깨 위로 천장이 무너질듯하다. 천장에는 온통 구름과 용그림으로 도배되어 있다. 낮은 천장에 용그림과 구름을 그린다고 천장이 높아질까?
옆에 있는 명부전까지 한달음에 돌아보고 그 유명한 금동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는 성보 박물관으로 향했다. 한번 도둑 맞아 손 탄 보살상은 전각에 모시지 않고 박물관에 모신단다.
박물관을 들어 서니 바로 금동지장보살상이 보인다. 조형미로는 최고라는데 딱 보는 순간 요즘의 ‘아이돌’이 생각났다. 반짝반짝 예쁘기도 하다. 돌아가신 분 명복보다는 저런 아들 낳고 싶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면 딱 어울릴 보살상이다.
박물관에는 추사 김정희가 죽기 1년 전에 썼다는 백파선사부도비가 있다. 원래는 부도가 있는 자리에 있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탁본을 뜨는 바람에 박물관에 옮겨났단다. 있던 자리에 새부도비를 세웠나 모르겠다. 복사본이라도 세우는 것이 백파선사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서예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일단 글씨가 힘은 있어 보인다.
요즘 한국화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좀 더 진행이 되면 나중에 서예까지 그 영역을 넓혀 볼 생각이다. 그 때가 되면 지금 순간을 아쉽게 생각하겠지.......
선운사를 돌아 나오면서 넓은 마당과 만세루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나왔다. 내 생전에 여길 다시 올까? 사실 이 절은 20대에 한 번 와 본 곳이다.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는 절 앞에 있는 식당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는 것뿐...
오늘 와서 보니 점심이 장어였던 것 같다. 선운사 주변에는 장어 구이집 천지이다.
가이드선생님이 세 지장보살상 중에 어느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질문을 여러 명에게 하셨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석조 지장보살상을 꼽았다. 선생님 말로는 석조지장보살상을 지목한 사람들은 '영적인 힘'이 강한 사람이란다.
역시 나는 찍는데는 일가견이 있다. 오랜 훈련탓일게다.
나 영성이 강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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