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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 '수덕사'에 갔다.
많은 글과 소문으로만 듣던 수덕사에 갔다.
버스 주차장에서 내려 사하촌을 지나니 일주문도 아닌 '덕숭산 덕숭총림 수덕사'라는 일주문 형태의 문이 나온다. 심하게 배흘림이 되어 있는 기둥이 눈에 띄인다. 단청이 없는 것이 더 친근한게 느껴진다.
조금 더 걸어 가니 일주문과 선 미술관, 지붕 공사를 하고 있는 수덕여관이 보이고 더 걸아 가니 금강문, 사천왕문이 차례로 나온다.
사천왕문을 지나니 황하정루가 보인다. 이 누를 지나면 당연히 대웅전이 보이겠지하고 하고 걸어 가는데 한 번 더 계단을 올라야 대웅전이 보이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 살짝 아쉽다.
많은 문들과 누를 지나면서 점점 고조된 어떤 기대감이 살짝 꺽이는 것을 느낀다.
계단을 오르니 새로 조성한 듯한 탑이 그 '수덕사 대웅전'을 가리고 있다. 살짝 옆 걸음을 하니 사진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대웅전이 우뚝 서 있다.
기단 양쪽으로 있는 계단의 새하얀 색조가 너무 튄다. 700년 된 기단의 다른 돌들과 너무 차이가 난다.
풍화된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다해도 색조가 약간 황색인 돌을 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대웅전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드디어 왔다'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아마도 예전에 운주사에 갔었을 때도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수덕사나 운주사나 내가 언젠가는 가고 싶었던 곳이다. 단지 고려시대 목조 건물인 대웅전이라서 꼭 보고 싶었는지 아니면 근대 불교 중흥의 본 고장이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탐사여행의 스케줄을 짤 수 있는 위치가 되자 제일 먼저 선택한 곳이 이곳이다.
아마도 내가 이 문화탐사 여행에 능동적으로 참여한 이유는 내가 보고 싶은 곳을 선정할 수 있다는 점 일 것이다.
정면 3칸, 맞배지붕, 주심포 양식의 공포. 그러나 수덕사 대웅전은 역시 측면이 중요하다.
정면을 좀 바라보다 측면으로 돌아가니 그 유명한 우미량과 화반이 보인다. 측면은 특이하게도 4칸이지만 기둥간 거리가 좁아 정면보다는 좁다. 역시 책에 있는대로 가운데 기둥의 초석이 제일 면적이 넓다.
단청이 없고 비교적 간단한 주심포 양식의 건물은 고풍스런 분위기와 함께 강건함을 느끼게 한다. 근 700년 동안 몇번의 증축을 통해 기와와 벽채는 바뀌었겠지만 기둥만은 7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듯 심하게 마모되고 갈라져 있다. 사찰에 갈 때마다 갈라지고 반들반들해진 기둥을 한번씩 꼭 만지고 온다.
여기를 거쳐갔을 나 이전의 그 많은 사람들의 삶을 상상해보려 한다.
예불을 하고 있는 대웅전을 조심조심 들어갔다. 석가모니 삼존불이 보이고 그 뒤에 후불 탱화가 보인다 불단 뒷 쪽에는 수덕사에서 유명한 괘불이 함에 들어 있는 것이 보인다. 저 괘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언제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면 언젠가 국립박물관의 괘불 전시실에서 볼 수 있겠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니 서까래가 그냥 노출되어 있는 연등천장이다. 언젠가 부석사에 갔을 때도 노출된 서까래를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우리가 흔히 가는 대부분의 조선 중기 이후의 사찰은 서까래를 가린 우물 천장이다. 노출된 서까래에 희미하게나마 그림이 남아 있다. 아마도 용그림인 것 같다.
대들보 위에는 밖에서 본 화반이 또 놓여 있다. 조선시대 사찰 처럼 내부에 화려한 공포는 없어도 대들보 자체의 모습에서 위엄을 뽐내는 것 같았다. 삼배를 한 후 주위를 보니 대웅전 우측벽에 산신탱과 독성탱, 신중탱이 있다. 이 절의 산신은 독립적인 전각을 갖지 못하고 대웅전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이 절의 사세로 보아서는 산신각 하나 정도는 무리가 아닐 탠데 왜 독립하지 못했을까?
대웅전을 나오면서 회원들끼리 단청을 하는것이 좋은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있는 것이 좋은지 의견이 분분했다. 내 생각으로는 단청보다는 그냥 이대로가 좋다. 나는 생얼을 좋아한다.
대웅전에서 내려 오면서 대웅전 앞 석탑을 보았다. 살짝 파괴된 고려시대 석탑과 각이 살아있는 현대석탑을 보았다. 1990년대 찍은 사진에서 본 석탑과 모양이 또 다르다. 정말로 최근 것이다. 최근의 석탑은 기단 부위에 사자상도 넣고 여러가지 멋을 부렸다. 우리나라 석탑형에서는 불국사 석가탑이 이미 최고봉에 갔기 때문에 그 이후의 석탑들은 변형시킬수 밖에 없었다는 어느 책의 문장이 생각났다. 언제 다시 석가탑을 보러 가고 싶다.
황하정루의 지하에 있는 성보 박물관에 들렸다.
일제시대 때 대웅전 보수 작업의 내용과 순서를 그래픽으로 잘 표현했는데 요즘 유행하는 3D 동영상으로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덕사에서는 대웅전 빼고는 전각들이 근대것이므로 다른 전각들은 그저 한번 휘 둘러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내려 오는 길에 환희대의 원통보전을 둘러 보았다. 그 유명한 일엽스님이 돌아가신 곳이기도 하지만 처음 이 모임에 참여한 회원들에게 고려시대 대웅전과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사찰의 형태를 비교해 주고 싶었다.
환희대의 원통보전은 조선시대 후기 사찰 장엄의 '끝장'을 보여준다. 화려한 다포계 공포, 금단청, 꽃살문, 보통 극락전에 많이 장식하는 용머리까지... 내부는 49제를 하는 관계로 잘 보지 못하고 문틈으로만 보았는데 관세음보살상도 꽤 큰 것 같았다. 과유불급...
내려 오는 길에 수덕여관의 암각화를 보았다. 글쎄... 무엇을 말하려는 지 잘 모르겠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미술은 인상파그림까지.... 암각화는 마치 풍화된 오래된 비석같아 보였다. 풍화되고 깨져서 그 뜻을 후손들이 알아보기 힘든 비석..
수덕여관은 공사 중이라 안마당은 보지 못하고 외부만 보았다. 외부에 나 있는 앙증맞은 퇴마루와 난간이 너무 예뻤다. 저기에서 벗과 앉아 나누는 차맛은 어떨까?
같이 간 회원분이 이 여관을 한옥체험으로 개발하면 꽤 괜찮을 것이라고 했는데 나도 동의한다. 숙박이 힘들면 찻집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
수덕여관은 오래된 여관 건물이라는 것보다는 이 여관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말 흥미진지하다. 일엽스님, 나혜석, 이응로화백, 박귀옥, 그리고 일엽스님 아들... 우리 나라 현대사(일제강점기, 민주, 공산주의 이념투쟁)가 응축되어 있는 건물이다.
수덕여관 바로 아래에는 선미술관이 있다. 이응로화백의 그림 조금과 글씨로 유명하셨던 원담스님의 글씨가 전시되어 있다. 솔직히 이응로화백의 그림은 한 30년 전에 호암미술관에서 전시할 때 본 것이 전부인데 문제는 그림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 때 본 그림들이 이번에 본 그림들과 비슷한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먹으로 그린 사슴그림은 눈에 와서 꽉 박히는 느낌을 받았다. 아줌마들에게 한마디씩 듣는 그의 일생과는 상관없이 그의 그림에서 정감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내려오는 길 옆에 원담스님의 부도가 보였다. 책에서는 없던 것인데 무엇이지 재빨리 가서 보니(명색이 가이드이므로) 원담스님의 부도이다. 너무 높이 있어서 우리가 가보지 못한 만공탑도 현대식 부도였는데 원담스님 부도도 현대식으로 재해석했다. 그러나 연화좌를 너무 높이 올려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수덕사는 대웅전도 멋있지만 근대사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욱 흥미롭다. 경허, 만공, 원담, 일엽, 나혜석. 이응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