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기외 사찰

20111204 3. 운달산 김룡사

gotemple 2011. 12. 5. 20:34

http://www.koreatemple.net/korea_temple/traditional_temple/history/view.asp?temple_seq=778&category_id=7

http://blog.naver.com/cyberman65?Redirect=Log&logNo=10091432503

http://blog.naver.com/snk8513?Redirect=Log&logNo=10096570088 이층누각

 

이번 대중공양을 주최하신 주지스님께서 서울로 올라 오는 길에 김룡사를 들린다고 하셨다. 예정에 없었지만 올라 오는 길이니 들리시기로 하신 것이다.

예정에 없던 곳이라 미리 예습을 하지 않아서 이 사찰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내가 흔히 기억하는 사찰은 국보와 보물이 많은 사찰이다. 기억에 없는 것을 보니 국보나 보물은 없는 것 같았다.

스님께서 이 절에 들리자고 하신 이유는 지금은 사찰의 세가 줄어 들어 직지사의 말사이기는 했지만 예전(일제시대때)에는 여러 말사를 거느린 경상도의 큰 절이었단다. 성철 스님을 비롯해서 근대의 큰 스님들이 거쳐 가신 곳으로 봉암사가 특별 수도원으로 뜨기 전에는 큰 절이었단다. 사세가 봉암사로 옮겨가면서 김룡사의 중요성이 작아진것 같았다.

 

스님의 입장에서는 '큰선배'들이 계시던 곳이니 와보고 싶었을 것이다. 스님도 처음이시란다. 스님들이 생각하는 사찰의 의미와 재가자들의 의미는 다르다.

 

김룡사는 전형적인 신라계 산지 사찰의 모습이다. 갓파른 언덕에 계단식으로 전각들이 촘촘히 들어서있고 마당이 좁다.

 

차에서 내려 멋진 나무 사이로 걸어 올라가니 보왕문이 보이는데 특이하게도 소슬대문이며 문짝에 사천왕상이 그려져 있다. 사찰에서 문짝이 있는 소슬대문은 흔하지 않다. 보장문을 지나 90도 꺽어 또 계단을 올라가면 사천왕문이 있는데 사천왕상은 석조이다. 여러모로 특이하다.

 

이른바 '공간'을 늘이기 위한 루가 대웅전 앞에 있다. 다만 대웅전 진입로가 루 밑으로 들어가지 않고 루 옆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이른바 공양간의 '공양주의 눈치를 보면 진입'하는 형국이다.

과거에 일반인들의 장로운 출입을 꺼리는 사찰이었을 것 같다.

루 옆의 계단을 다 올라가니 ㅁ 자 마당이 보인다. 넓지 않은 마당이다. 전각들의 지붕이 닿을 듯하다.

 

대웅전은 봉암사의 금색전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잘 짜여진 다포공포를 자랑하는 팔작지붕 전각이다.

봉암사의 금색전처럼 공포의 쇠서에 연꽃 장식을 해서 화려한 느낌을 준다.

불상은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불의 삼존불을 모셨고 족자형의 후불탱화가 있다. 닫집은 없다.

 

대웅전을 바라보고 왼쪽에 있는 설선당은 정말 잘 만들어진 목조 건물이라는 느낌이 온다. 이익공계통의 전각으로 예쁜 화반까지 있다. 한때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내에서 가장 큰 온돌방이었단다.

측면 2칸 중 한칸은 마루이다.

 

시간이 넉넉하지 못한 모든 전각을 샅샅히 볼 수 없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김룡사의 주요 전각인 명부전 가는 길에 있는 다 쓰러져 가는 이층누각이다.

이름도 붙지 않은 누각이고 정말 오래된 목조 건물의 정수를 보여준다. 오른쪽으로 10도쯤 쓰러져 있어서 보는 이의 긴장감을 일으키다. 제대로 다듬지 않고 모양과 각도도 제각각인 1층의 기둥은 감탄을 일으키다. 아마도 2층은 보관창고 였던 것 같다.

 

김룡사에서 가장 기도발이 세다는 명부전에 갔다. 아무리 문화재 탐방이 목적이라해도 기도발이 좋다는 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스님이 기도 중이어서 들어 갈수는 없었다. 지장보살과 시왕들이 언뜻 보였다. 명부전의 공포는 다포계인데 공포가 매우 간단하다. 다포계인지 이익공인지 잘 모르겠다. 정말 특이한 절이다.

 

시간이 촉박한데 기도발 세다는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신도들의 분주한 발걸음을 보는 주지 스님의 표정이 씁쓸하다. 아무리 내 마음의 불사와 마음공부에 대한 법문을 들어도 '기도 잘 받는 곳'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우리는 그저 '불쌍한 중생'이다.

 

나오는 길에 보장문 근처에 있는 '전통 해우소'를 구경했다. 사용하려는 의도보다는 구경하겠다는 의도였다. 들어가보니 문이 없는 전통 해우소이다. 바닥에 뚫린 구멍 사이로 저 아래가 보인다. 높이가 제법되어 빠지면 큰일 날 것 같다. 더 무서운 것은 바닥이다. 저 얇은 판자가 나의 몸무게를 지탱할 지 장담 하지 못하겠다.

나 어릴 때만 해도 흔했던 '변소'가 이제는 어렵게 볼 수 있는 문화재가 되었다. 이제 사찰에서도 전통 해우소를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얼마 전에 읽은 미국 어느 대도시의 공원 화장실에는 문짝이 없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노숙자들이 상주하는 것과 마약투여장소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문짝을 만들지 않았단다. 문화란 필요의 산물이다.

 

시간에 쫓겨 워낙 정신없이 보고 나와 뒷산을 보지 못했다. 사찰에서 사찰 뒷산은 매우 중요한데 뒷산을 둘러 볼 여유조차 없었다.

 

집에 돌아오며 생각해보니 역시 사람들의 일에는 '지형'이 중요하다는 생각했다.

 

아무런 기초 지식없이 사찰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내 눈 앞에 어떤 것들이 펼쳐질지 모르기 때문에 기대감이 높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2년 전에 읽었던 '곱게 늙은 절집'이라는 책에 이 절의 해우소가 소개되어 있다.

2년 전에 읽었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 하다.

그래도 해우소라도 제대로 보고 와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