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

20181201 제주 올레 10코스 (송악산-운진항) (순방향)

gotemple 2018. 12. 1. 21:00

이번에는 제주 올레 10코스를 걸어보기로 했다.

10코스는 이른바 '다크투어'의 테마를 가진 코스이다.

이 코스에는 일제시대 일본군 비행장의 흔적과 4.3 사태의 유적이 남아 있다.

송악산입구에서 시작해서 송악산을 한바퀴 돌아 운진항까지 걸었다.


제주에 자주 오면서 지금의 '휴양지'로서의 제주가 아닌 한반도 변방으로서의 과거 제주의 흔적을 점점 보게 된다.

고려시대 삼별초가 주둔했던 반란의 땅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최고의 유배지였다.

일제시대 때에는 일본군 기지로의 역할 때문에 주민들이 고초를 당했고 해방 이후에 이념 전쟁에 휩쓸려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에 이미 많은 주민들이 죽임을 당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 때 북한군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 온 피난민들을 받아 들여야 했던 곳이다.

자신의 가족은 공산주의자라고 죽임을 당했는데 공산주의자들을 피해 피난온 피난민들을 바라보았던 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한국전쟁 때 제주까지 피난을 갔던 나의 친정 엄마는 아직도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 당시 제주민들이 피난민들을 구박했다고 한다.

사춘기 때 전쟁을 겪은 엄마는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데 나는 그 당시 제주민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전쟁은 정말 '우리'의 전쟁이 아니었다. 조선 민족은 다만 독립을 원할 뿐이었다.

강대국의 이념 투쟁에 약소 민족이 대리 전쟁을 한 것 뿐이었다. 정말 너무나 억울한 전쟁이다.


4.3 사건의 유적을 보면서 저 당시 공산주의자를 자처했던 인물들이 과연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어나 보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동조했던 많은 사람들이 문맹이었을 것이다.

설명을 들으니 처음에 어느 중학교 국사 선생님었던 20대 주동자가 경찰서를 공격해서 양민학살의 시초를 만들었다고 한다.

해방 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이 갈라졌을 때 그들은 제주도를 공산주의의 영역으로 만들고 싶었나보다. 그저 경찰서를 약탈하므로서 무엇을 얻으려고 했을까? 그 약탈이 무자비한 학살로 이어지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2차대전 후 이념 전쟁을 시작한 미국과 소련이 어떻게 대응할지, 그들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한국 전쟁 전 일어난 43 사건은 한국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희생자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희생자 수를 더 늘리는 결과가 되었다.


그들은 그저 육지에 대해 반골의 기지를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오백년 조선 역사 동안 제대로 백성의 대우를 받지 못한 한을 표출했을지 모른다. 최고의 유배지에서 평생을 산 사람들은 평생 유배당한 사람이라는 것을 뜻할까? 조선 시대에는 제주사람이 함부로 육지로 갈 수 없었다.

그들이 원한 건 단지 사람대접을 받고 싶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지금 보기에 정말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 속에서 오랫동안 투쟁의 삶을 산 제주민들의 아픔이 이 코스에서 느껴졌다.


송악산 설명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52XXXX126672

43사건 설명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1439

알뜨르 비행장 설명 :https://ko.wikipedia.org/wiki/%EC%95%8C%EB%9C%A8%EB%A5%B4_%EB%B9%84%ED%96%89%EC%9E%A5






송악산 해안진지


용머리 해안 같은 지질형태를 보인다.


마라도 가는 배


대장금 촬영지











송악산 올라 가는 길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



















나무칩으로 블럭을 만들어 바닥에 깔았는데 믈럭이 축소했다.

자연 친화적이기는 한데 내구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송악산을 한바퀴 다 돌고 내려왔다.












예전에 비행장이었던 곳이 이제는 밭이 되었다.

























이 분의 작품은 예전에 해인사에서 본 적이 있다.

작품의 내구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대나무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매우 특이했다.
























생각보다 전투기의 크기가 작았다.

아마도 이런 종류의 전투기로 일본군은 가미가제를 했을 것이다.

히로시마의 원자폭탄이 터지지 않았다면 테평양 전쟁 말기에 이 제주도도 연합군의 폭격기에 쑥대밭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비행장 시멘트 바닥이 아직도 남아 있다.









어둡고 무서워서 더 들어가지 못했다.






양쪽 나무를 엮어서 나무 문을 만들고 재활용 설치 예술을 만들었다.




아마도 오는 길에 있던 특이한 설치예술을 만든 분이 사는 곳 같다.




이 텐트의 주인은 젊은 여자였다. 내가 앉아서 쉬는 동안 텐트에서 나와서 텐트를 걷고 짐을 싸고 다시 여정을 떠났다.

나는 젊더라도 무서워서 혼자 텐트 여행은 못할 것 같다.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텐트를 칠 수 있는 나무 데크가 있어서 텐트 치기에는 좋은 것 같다.

내가 힘들어서 이 데크에 좀 누워 있었더니 지나가던 올레꾼들이 한두명씩 눕기 시작했다.




운진항의 마라도 가는 선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