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기외 사찰

20180908 강릉의 폐사지 1. 굴산사지

gotemple 2018. 9. 8. 22:00

강릉 주변에 폐사지가 꽤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강릉주변의 폐사지를 돌아 보기로 했다.

 

 

대창리와 수문리 당간지주는 강릉 시내 안에 있어서 강릉역에서 걸어 갈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굴산사지가 제일 멀다.

 

 

굴산사지는 중고교 때 국사책에 나왔던 폐사지이다.

그 유명한 신라말 선종 구산선문 중의 하나이다.

 

굴산사지는 강릉시 구정면 학산2리 윗골마을의 마을회관 일대에 있는 절터이다.

굴산사는 신라 문성왕 13년(851)에 범일국사(梵日國師, 810∼889)가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 9산선문(九山禪門) 중의 하나인 사굴산문의 중심 사찰이었다. 굴산사는 고려시대에 지방호족들의 지원하에 번성한 후 조선초 이후의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조선초 이후에는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굴산사지당간지주(보물 제86호), 범일국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굴산사지승탑(보물 제85호), 강릉굴산사지석불좌상(강원도문화재자료 제38호) 등이 남아 있어 굴산사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굴산사지 일대는 현재 주변이 농경지로 변하여 사역의 정확한 범위를 알 수 없었으나,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한 수해로 긴급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사역의 크기는 동-서 140m, 남-북 250m의 크기로 확인되었다. 또한 토층은 3개층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는데, 1·2문화층은 유실되었으나 3문화층은 아직 남아있는 부분이 많은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법당지·승방지·회랑지·탑지 등도 확인되었다.

강릉 굴산사지는 우리나라 9산선문의 중심사찰로서,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한 수해로 긴급발굴조사를 통해 법당지·승방지·회랑지 등의 유구가 확인된 역사상·학술상 귀중한 유적이다. (문화재청)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25603&cid=46648&categoryId=46648

https://ko.wikipedia.org/wiki/%EA%B0%95%EB%A6%89_%EA%B5%B4%EC%82%B0%EC%82%AC%EC%A7%80

 

강릉시내에서 굴산사지를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가는 길은 쉽지 않다.

강릉 버스 101번, 105번 버스가 간다.

 

 

버스가 두시간에 한 대씩 있다.

 

 

 

갈 때는 101번 버스를 타고 올 때는 105번 버스를 탔다.

갈 때 101번 버스가 시내를 빙글빙글 돌기에 남대천 강릉교 정거장에서 버스를 탔다.

101번 버스는 굴산사지 근처에서는 갈 때 내리는 정거장(굴산사입구)과 올 때 타는 정거장(굴산사지)이 다르다.

 

 

남대천, 강릉교 버스 정거장의 101번 버스 시간표

 

 

남대천, 강릉교 버스정거장. 강릉 남쪽으로 가는 많은 버스가 지나는 정거장이라 매우 크다.

남대천, 강릉교 정거장의 다른 버스 시간표 : http://blog.daum.net/gotemplestay/570

 

 

 

 

 

버스가 하루에 네번 있다. 남대천, 강릉교 정거장을 지나지 않는다.

 

 

오고 갈 때 정거장이 같다.

남대천 강릉교 정거장을 지나지 않는다.

 

 

굴산사지 이정표는 좀 오래되어 잘 보이지도 않고 승탑가는 이정표가 잘못 되어 있어서 승탑 갈 때  좀 헤매였다.

굴산사지 이정표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오래되어 잘 안보임.

 

 

 

 

 

 

 

 

 

 

굴산사지 당간지주 설명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67911&cid=40942&categoryId=33380

 

 

 

문화재청 사이트에서 가져 옴.

 

 

길이 5.4m, 1m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당간지주라고 한다.

시내에 있는 당간지주와는 달리 논 한복판에 있으니 더 커 보인다.

주변의 산세와 대비되어 멋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폐사지의 풍경을 보여 준다.

 

위 아래 두 개의 기둥을 관통하는 간공이 있다.

 

 

 

 

천년도 더 된 당간 지주인데 한번 깨끗이 닦았는지 색이 하야서 오랜된 것 처럼 보이지 않는다.

 

 

 

 

석불좌상 설명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01g1464n1503

 

 

 

 

 

 

 

 

 

 

깨졌던 불상을 다시 붙인 것 같다.

얼굴이 마모가 심하다는 설명이 있는데 그저 풍화작용에 의한 마모라기보다는 누군가 내리쳐서 얼굴이 갈라져 떨어진 것 같다.

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지만 원래 자리는 아닌 것 같다.

 

 

 

 

 

 

 

다시 당간지주쪽으로 걸어와서 아까 내렸던 버스 정류장에서 학산쪽으로 조금 걸었더니 서낭당이 나타났다.

 

 

http://tour.gwd.go.kr/resource/resource.do?lang=ko&url=http%3A%2F%2Flod.gwd.go.kr%2Fresource%2FFA10005_T

 

 

 

 

 

 

서낭당 옆에 부도 가는 길이라고 이정표가 있는데 그 길로 갔더니 길이 없다.

예전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풀로 덮혀 있다.

부도가 빤히 보이는데도 길이 없다.

차도 따라 학산2리마을회관 정거장으로 갔더니 그 곳에 진입로가 있었다.

이정표 정리를 해야할 것 같다.

 

 

 

 

 

 

 

 

이곳이 사찰이 있던 위치이다. 절의 입구인 당간지주를 지나 시내를 건너면 사찰이 있는 위치였다.

 

 

멀리 부도가 보인다.

발굴한 사찰의 위치와 부도의 위치를 보았을 때 부도는 원래 위치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고려시대까지 부도는 사찰의 대웅전 뒤나 측면에 있었다.

조선시대에 가서 부도가 주요 전각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도 처녀 잉태의 전설이 있다.

 

 

부도 가는 길 옆에 있다.

 

 

 

 

 

 

 

 

학바위 올라가는 길. 학바위까지 가지 않았다.

 

 

 

 

 

 

승탑 설명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06752

 

 

부도 앞에 크고 넓은 돌이 있는데 아마도 사찰 발굴 때나온 것 같다.

 

크기나 모양이 전형적인 고려 시대 부도이다.

지리산 연곡사에 있는 고려시대 부도와 비슷한 느낌이다.

 

 

 

 

팔각원당형 부도이지만 비율이 전형적이었던 통일신라시대와는 달리 매우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 준다.

 

 

 

 

접시모양의 받침돌은 고려시대 부도의 특징이다.

 

 

 

 

 

 

오독떼기 전수회관

 

 

이런 한적한 곳에 카페가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