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식사를 그 유명하다는 서산 꽃게탕 집에서 맛있게 먹고 성공회 강화상당에 갔다. 조금 늦게 가서 예배가 끝나고 문을 닫은 후라 실내를 볼 수 없어서 안타까왔다. 다음에 올 때 예약을 하고 오면 안을 볼 수 있단다.
이 성당은 성공회성당임에도 불구하고 한옥으로 지어졌다. 1900년에 지어 진 건물인데 이른바 두 개의 이질적인 문화가 어떻게 조화롭게 융화될 수 있는 지를 보여 주는 건물이다.
노아의 방주를 연상해서 지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약간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외간문은 양반집이나 서원을 연상 시키는 솟을 대문이다. 내간문은 사찰의 사천왕문을 연상 시키지만 안에 사천왕상 대신 종이 놓여 있다. 종은 서양식 종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찰의 종과 형태가 유사한데 비천상이나 연꽃 대신 Canterbury Cross 가 그려져 있다.
성당 건물은 언뜻 보면 지붕이나 단청 때문에 사찰 처럼 보이지만 하나하나 뜻어보면 많이 다르다. 먼저 장방형의 바실리카 구조로 되어 있고 벽돌로 외벽을 높이의 1/2 정도 로 쌓았다. 벽돌벽은 우리나라보다는 중국에 많이 있다. 문도 아치형으로 우리나라보다는 중국식이거나 영국식에 가깝다.
지붕은 이층구조로 위층과 아래층 사이에 유리창을 달아서 일반 성당건축에서 중요한 '빛'의 영향을 포기하지 않았다. 창문 사이로 들여다 본 실내에는 주로 사각 기둥이 많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궁궐이나 사찰에서는 사각기둥을 거의 쓰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민가 한옥의 기둥은 사각기둥이지만 그 두께가 다르다.
단청에는 연꽃과 함께 태극무늬까지 있었다. 물론 문에는 Canterbury Cross가 그려져 있었다. 공포는 사찰의 화려한 공포라기보다는 민가의 간결한 익공계인 것 같다. 따라서 단청을 빼고는 사찰을 따라했다기보다는 그저 조금 큰 사대부의 한옥을 참조한 느낌이다.
1900년대, 조선이 망하고 프랑스와 미국이 침략하던 격동의 시대에 강화도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성당에 왔을까?
우리가 옛 건물들을 볼 때는 현재의 눈으로 보지 말고 그 시대 사람들의 눈으로 보라는 어떤 사람의 충고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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