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기외 사찰

20120610 안동 2. 천등산 봉정사

gotemple 2012. 6. 11. 20:05

봉정사는 예전부터 꼭 가고 싶었던 사찰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이 있는 사찰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부석사 무량수전이 제일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어느새 봉정사 극락전으로 바뀌었다.

 

고려시대의 목조 건물..

제일 오래 된 건물...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나무로 지은 건물이 700년 이상 서 있다는 것이 기적이다.

살아 있는 나무도 700년 가기 힘들다.

고려 말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안동 지방으로 피난을 왔다던 공민왕이 보았을 극락전을 내가 볼 수 있는 것이다.

 

주차장에 내리니 다소 부담스러운 아스팔트 경사길이 보인다.

봉정사 진입로는 참나무로 유명하다는 구절을 유홍준님의 책에서 읽었는데 참나무는 보이지 않고 늠름한 소나무만이 보인다.

소나무로 둘러싼 경사길이 적절히 구부러져 있어 운치가 좋았다.

사찰은 역시 진입로가 좋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조금 올라 가다보니 왼쪽에 퇴계 이황이 공부했던 곳을 기념하여 지은 '명옥대'가 보인였다.

정자 주변과 계곡에 나무가 우거져 길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봉정사를 앞두고 오솔길을 지나 명옥대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퇴계는 봉정사 코 앞에까지 와서 공부를 하고 글도 그렇게 많이 남겼지만 봉정사에 대한 언급은 단 한줄도 쓰지 않았다. (완전무시 : 악플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플이라는 것을 이황을 이미 그 때 알고 있었다.) 옹골 찬 성리학자의 꼿꼿함을 생각하니 쓴 웃음이 나왔다.

 

좀 올라가니 일주문이 보이고 일주문을 지나니 '책에서 읽었던 참나무 길'이 나왔다.

(아마도 내가 책을 대충 읽었나보다. )

 

잘 생긴 참나무들을 지나니 멀리 만세루로 올라 가는 계단이 보인다.

계단은 전혀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적당히 계단 모양으로 쌓아 놓은 계단이다. 계단 양 옆과 쌓아 놓은 돌 사이에는 토끼풀 꽃이 하얗게 피어 있다. 방금 전 보았던 학봉종택의 새하얗고 각진 화강암 계단과 너무 비교가 되었다.

 

나는 1970년대, 1980년대 경제개발 시대에 유년기를 지낸 사람으로서 '편리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충 자연석으로 쌓은 돌계단은 조심하지 않으면 헛딛기 쉽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올라가거나 주위 경치보며 올라가다가는 발삐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불도저' 마인드를 가졌다면 새로 싹 석축계단으로 갈아 엎으면 좋겠지만 한발 한발 한계단 한계단 올라가며 '순간 순간'에 집중하는 나 자신(넘어지지 않으려고)을 발견했다. '이 순간을 잃어버리면 평생을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말을 떠 올렸다.

 

만세루 밑을 지나 대웅전 마당에 올라서니 대웅전이 보인다.

극락전을 먼저 보기 위해 왼쪽으로 돌아가니 그 유명한 극락전이 보인다.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다. 예전에 보았던 부석사 조사전의 확장판이다.

아마도 전면에 문 한짝만 남기고 문 옆으로는 문이 아닌 창을 만들어 놓아 그런 기분이 더 나는 것 같다.

 

답사 가기 전에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점검하느라 '나의 느낌'을 놓치기 쉽다.

이 봉정사가 그렇다.

그러나 실제로 본 극락전은 사진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견고하고 덜 낡아보였다. 대들보와 서까래가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의 강건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 유명한 지주형 닫집도 500년 이상된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부처님께 삼배를 하고 좀 돌아 본 후에 나왔다.

 

극락전을 위로 하고 대웅전으로 향하니 실내에서 49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힘겹게 왔고 언제 다시 이 절에 올지 모르기 때문에 조용히 한 쪽으로 들어가 절을 하고 잠시 실내를 구경한 후 나왔다.

책에서 읽은 바에 의하면 봉정사는 극락전도 좋지만 대웅전이야 말로 '미학적 완성도'가 높은 전각이라는 데 그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먼저 대웅전의 크기가 너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것이 내 생각에 딱 적당한 것 같았다. 또한 지붕과 기둥의 길이, 좌우 넓이의 비율이 좋았다. 내부 장식도 감입보개형 닫집이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품위를 지키고 있고 우물천장의 꽃그림도 단아하면서도 세월의 깊이가 새겨져 있었다.

 

이렇게 서두르며 돌아다니는 것이 아닌 좀 여유를 가지고 마당에 한참 앉았다 가고 싶다는 아쉬움을 느끼며 영산암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