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기 사찰

20181114 양주 회암사지 1. 박물관

gotemple 2018. 11. 14. 19:25

회암사지는 고려시대와 조선초까지 꽤 번성했던 대사찰이다.
문정왕후 사후 유생들에 의해 불이 탄 후 산흙으로 묻혀버렸다가 최근에 유적을 발굴하고 박물관이 세워졌다.

언젠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회암사지에서 나온 풍경을 보았는데 엄청난 크기였다. 처마 끝에 다는 풍경이 저 정도 크기면 전각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한번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가을 끝자락에 가게 되었다.

 

그동안 폐사지를 여러 군데 다녀왔는데 이렇게 발굴하여 정리하고 박물관까지 세운 폐사지는 처음 보았다.

비록 박물관에 화려한 유물은 없지만 그 시대의 회암사의 영화를 재현해서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놓았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이 오면 좋을 곳이다. 박물관을 재미있게 구경하고 넓은 잔디밭에서 뛰어 놀면 좋을 것 같다.

단지 근처에 식당이 별로 없고 한적한 것이 아쉽다. 식사는 덕정역 근처에서 먹어야 한다.

박물관 안에는 작은 카페가 있다.

 

회암사지 이야기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25h2936b

                        https://ko.wikipedia.org/wiki/%EC%96%91%EC%A3%BC_%ED%9A%8C%EC%95%94%EC%82%AC%EC%A7%80

회암사지박물관 홈페이지 : http://museum.yangju.go.kr/site/hasj/main.do

 

 

 

 

덕정역 앞 정거장에서 78번 버스를 타고 회암사지 박물관 앞에서 내리면 된다.

택시를 타면 5,500원 정도 나온다.

 

 

 

 

 

 

 

 

 

 

 

 

 

 

 

 

 

 

 

 

 

 

 

 

 

 

 

 

 

 

 

 

 

 

 

 

 

 

 

 

 

 

 

 

 

 

 

 

 

 

 

 

 

 

 

 

 

 

 

 

 

 

 

 

 

 

 

 

 

 

 

 

 

 

 

 

 

 

 

 

 

 

 

 

 

 

 

 

 

 

이것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엄청난 크기의 풍경이다.

 

 

 

 

 

 

 

 

 

 

 

 

 

 

 

 

 

 

 

 

 

 

 

 

 

 

 

 

 

 

 

 

 

 

 

 

 

 

 

 

 

 

가람 설명 영상이 매우 입체적이어서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

 

 

영상이 시작되면 뒷 화면에는 영상이 보이고 아래에 있는 사찰 모형이 아래로 내려 간다.

 

 

 

 

 

사찰모형이 완전히 아래로 내려 가면 양옆에서 현재의 폐사지가 나온다.

 

 

 

 

현재의 폐사지

 

뒷 화면에서 각 부분에 대한 설명이 나올 때 아래 모형에서는 그 부분만 조명을 가해서 이해하기가 쉽다.

 

 

 

 

 

 

 

 

 

 

 

 

 

 

 

 

 

 

 

 

 

 

 

 

 

 

 

 

 

 

 

 

 

 

 

 

 

 

 

 

 

 

 

 

 

 

 

 

 

 

 

 

 

 

 

 

 

 

 

 

 

 

 

 

 

 

 

 

 

 

 

 

 

 

 

 

 

 

 

 

 

 

 

 

 

 

 

 

 

 

 

 

 

 

 

 

 

 

 

 

문정 왕후가 회암사에서 조성한 불화는 400개가 넘었고 이 불화들은 아마도 고려시대 불화의 맥을 이은 마지막 불화일 것이다.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려불화 전시를 했었는데 당시 문정 왕후가 조성한 불화가 네 점 정도 있었던 것 같다.(기억이 가물가물. 당시 사진을 찍지 않았었다. 당시 그 불화들을 보면서 조선시대에도 이런 고급진 불화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문정 왕후는 명종의 장수와 다산을 기원하며 많은 재정을 들여 조성하였지만 문정 왕후 생전에 불만이 많았던 유생들의 미움을 받아 결국 회암사는 문정 왕후 사후 폐사지가 되었고 명종은 일찍 죽고 자손을 남기지 못해 선조가 왕이 되었다.

조선 최초의 서자 출신(선조의 아버지의 중종의 서자) 왕이 되었다. 그리고 군신들에 의해 선택된 왕이 되었다.

즉 유학자들과 대비의 정치적 타협하에 택군이 된 것이니 그의 권력이 강하지 못하고 당쟁이 시작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리고 그 많던 불화들은 흩어져서 거의 남지 않았고 제대로 남아 있는 것도 일본에 있다.

문정 왕후 조선의 불교는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문정 왕후가 승시를 실시하여 뽑았던 사명당 대사 등이 임진왜란 때 활약을 하여 임진 왜란 후

불교는 전쟁 때 파괴된 사찰을 재건립할 기회를 맞지만 워낙 유생들의 미움을 받았던 회암사는 그 기회를 얻지 못한 것 같다.

(임진왜란 후 재건축된 사찰들은 성균관의 대성전보다 더 화려하게 재건축되어 억불숭유라는 무색할 정도였다.)

 

 

복제품

 

 

 

 

 

 

 

 

 

 

 

 

 

 

 

 

 

 

 

 

 

 

 

 

 

 

 

 

 

<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회암사지 유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