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안에 있는 호국지장사를 순례하기로 했다.
현충원은 한 40년 전 중학생일 때 한번 가보았다. 그 당시 서울 시내 중고교생들이 돌아 가면서 현충원을 청소하였는데 그 때 딱 한번 가 보았다.
그 당시 무척 덥고 힘들었다는 기억 밖에 없지만 그런 기회가 아니면 현충원을 가 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40년 된 기억 속에서 '땡볕'에 대한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호국지장사를 갈 때 현충원 정문을 통해 가지 않고 숭실대 입구역에서 출발해서 현충원 상도출입문을 통해 갔다.
여기가 서울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거진 산 속 길을 통해 호국지장사에 도착했다.
호국지장사는 지금은 현충원에 포함되었지만 원래 창빈 안씨의 원찰이었던 곳이라 조선시대 말에 조성한 불화들이 많이 있다.
창빈 안씨는 살아 생전에 권력없는 조용한 중종의 후궁이었지만 사후에 그녀의 손자인 선조가 왕이 되면서 '명당'의 효과를 톡톡히 보여 주었다. 생전에 큰 권력을 휘두르던 문정왕후의 혈통은 끊겼지만 선조 이후 300년 조선의 왕들은 안씨의 핏줄을 이어 받았다.
이런 자리에 국립묘지를 조성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내려 오는 길은 현충원을 거쳐 정문으로 내려왔다.
창빈 안씨의 묘도 가 보고 싶었는데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그냥 지나쳐 버렸다.
40년 만에 와 보는 현충원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현충원이 아니었다. 경내에 심어진 나무들이 이제는 아름들이 나무가 되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물론 햇빛에 하얗게 빛나는 묘지석들은 그대로이다.
1930년대에 태어나 1950년 대에 사망한 그들.... 그들의 빼앗긴 시간들이 너무 아쉽다. 그리고 고맙다. 그들의 희생 위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곳곳에 참배하러 오신 노인들이 보인다. 아마도 형제나 자식들이겠지. 이미 60년이나 지나 노령인 가까운 혈육들이 사망하면 그들에 대한 기억도 사라질거다. 물론 현충원은 기억하겠지만 그건 개인적인 기억은 아니다. 현충원의 기억은 집단적인 기억이지 살아있던 모습을 기억하는 개인적인 기억은 아니다.
현재의 현충원은 근처 주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었다. 산책하는 노인들, 유모차 끌고 온 엄마. 죽은 자와 산자가 공유하는 공간이 되었다.
호국지장사 설명 :
http://www.dongjak.go.kr/portal/bbs/B0000623/view.do?nttId=69257&menuNo=200881&pageIndex=1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52XXX2520840
지하철 7호선 숭실대입구역 4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동작충효길 안내판이 나온다.
서달산자락길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간다.
나무계단을 다 오른 후 좌회전.
현충원상도출입문으로 들어가서 길 따라 계속 걸으면 호국지장사가 나온다.
굉장히 호젓한 길이다.
오던 길을 조금 더 내려가면 절의 정문이 나온다.
정문
사천왕문 대신 부조를 세웠다.
남방증장천왕과 동방지국천왕
서방광목천왕과 북방다문천왕
연못 한 가운데 석등을 세웠다.
대웅전은 새로 지은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았다.
작지만 품위있어 보이는 전각이다.
전각의 후면을 내어 지어 수미단을 만들고 불상을 모셨다.
흔하지 않은 형태인데 부처님이 쪽방에 갇힌 느낌이다.
원래 대웅전은 부처님의 집인데 본인의 방에서 구석으로 몰린 느낌이다.
원래 불교가 들어 온 초기에는 불상이 전각 한가운데에 있다가 신자들이 대웅전에 들어 오면서 점점 뒤로 물러나는 형태를 보이는데 이제는 너무 물러나 버렸다.
지장보살, 석가모니부처님, 관세음보살
신중도
극락구품도. 쉽게 볼수 없는 구도이다. 간결하지만 기품이 있다.
대웅전 앞 대방
지장전의 역할을 하는 전각인데 전각이름이 없다.
지장보살
감로도. 소나무가 많이 그려져 있다.
팔상도
야외에 지장보살상을 세웠다.
현충원의 의미에 맞는 보살상이다.
지장보살 양 옆에 오래되어 보이는 석탑 두개가 있다.
튀어나온 자연석을 그대로 살렸다.
12지신상을 세웠다.
삼성각
보통 삼성각은 불상을 세우지 않고 탱화로 조성하는데 여기는 불상도 다 세웠다.
내가본 치성광여래상 중 가장 큰 불상이다.
극락전. 한칸짜리 전각으로매우 아담하다.
이 사찰은 전각을 새로 조성하면서도 크게 만들지 않았다.
보통 현대 사찰들의 전각은 점점 커지고 있다.
지장보살, 아미타여래, 관세음보살
범종각
종 아래에 항아리를 두었다.
능인보전
주조선이 뚜렷이 보인다.
신중도
지장도
부도
현충원의 나무들은 이제 그늘을 충분히 만들 만큼 컸고 숲 속 곳곳에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천변에도 산책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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