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기 사찰

20130916 도봉산 천축사와 석굴암

gotemple 2013. 9. 18. 08:37

서울 근교의 사찰을 다녀 보기로 정한 후 한 동안 열심히 가다가 좀 쉬었다.

다시 도봉산 인근의 사찰을 다녀 보기로 하고 천축사와 석굴암을 갔다.

도봉산은 한 30년 전에 한번 온 기억이 있는데 왜 왔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좀 걷는다는 분들은 한번에 산능선을 타면서 여러 사찰들을 방문하지만 그 정도 체력이 되지 않는 나는 욕심부리지 않고 천축사와 석굴암만 보고 오기로 했다.

아침 10시 30분에 지하철 7호선 도봉사 역에 내려서 걷기 시작해서 천축사에서 점심시간 30분 쉬는 것과 사진 찍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계속 걸었다.

다시 도봉산역으로 내려오니 4시 10분이었다. 내 수준에 무리한 날이었다.

 

지하철에 내려서니 월요일인데도 산행하시는 분들이 꽤 있었다.

아마도 연휴 시작이라 그런 모양이다. 꼭 일요일 같아서 길 잃을 염려는 없어 보였다.

 

도봉산 입구에는 생태관이나 국립공원 관리소 등이 시설이 멋져 보였다.

또 도봉서원을 복구한다는 알림판도 있는데 서원의 흔적은 아예 없어 보였다.

역사적으로 사회가 안정되고 무엇인가 자랑하고 싶어질 때 서원 같은 시설을 건축하거나 증축했다.

요즘 우리나라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지자체 영역에서는 서원이나 향교를, 각 문중에서는 조상 사당을 크게 증축하는 것이 유행인 것 같다. 또 다른 부의 과시인가.

 

서원지를 지나니 드디어 돌길이 계속 되었다.

숲은 소나무와 도토리 나무등 여러 나무들이 섞여 있는 숲이다.

 

관악산 깔딱고개 만큼은 아니지만 경사진 돌길이 계속되었다.

마지막 천축사 올라 가는 게단은 꽤 가파르다.

지형이 지형인 만큼 천축사에는 일주문이나 사천왕문이 모두 생략되었다.

가파른 계단 끝에 천축사란 이름을 새긴 팻말이 있을뿐.

입구 앞에 여러 부처상과 보살상(이름 밑에는 시주자의 이름이 적여 있었다.)을 모신 단을 지나자 골짜기 너머 전각이 나타났는데 전각 현판에 전각이름이 아닌 '천축사'란 사찰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위로 도봉산 봉우리를 이고 있는 모습이 괘 멋있다.

정말로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역시 우리나라 사찰위치 설정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뒷산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마침 정심 공양 시간이라 비빔밥을 먼저 먹고 사찰 구경을 나섰다.

가장 큰 전각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인데 전각 자체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전각 안에는 새로 조성한 후불 탱화와 옆 면에 따로 모신 오래 된 탱화가 혼재되어 있었다. 아마도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초에 조성한 후불탱을 최근에 만든 새 후불탱이 밀어 낸 모양이다. 조선시대 말 서울 근교의 사찰에 궁중 상궁들에 의해 많은 불사가 있었다고 들었다.

아마도 그 중의 하나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웅전 뒤에는 작은 석굴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아마도 돌산인 도봉산에는 '석굴' 테마의 전각이 많은 모양이다.

대웅전 왼쪽에는 화려한 전각의 독성각이 있고 독성각 왼쪽내벽에는 약사여래탱화가 모셔져 있었다.

 

마치 산성을 쌓은 듯한 축대 위에 조성된 산신각이 특이하게 보였다. 산신탱도 최근에 조성한듯하고 옆면에 작은 산신상을 많이 모신 것도 특이했다. 일반적으로 인등으로 장식한다.

 

역시 사찰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산신각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이 최고라는 생각을 했다.

 

천축사를 향해 올라 갔던 길을 다시 내려와 산장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후 석굴암으로 향하였다.

북한산국립공원 안에는 '석굴암'이라는 암자가 여러 개 있는 것 같았다.

산세 자체가 석굴을 파서 부처상을 모시고 싶은 욕구를 들게 만드는 것 같았다.

경주의 인공 석굴암이 아닌 자연 석굴을 파서 만들었으니 진정한 의미의 석굴암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석글암은 천축사 보다 더 정상에 가까운 위치에 있으니 올라 가는 길이 더 힘들 것은 뻔하지만 산장 주인께 길이 어떻냐고 물의니 별로 힘들지 않다고 하셨다. 아마도 그 분 수준에서 힘들지 않을게다.

산에서 길 물어 보면 '정직'한 대답을 듣기 힘들다. 얼마나 남았냐고 물은 면 바로 위라고 대답하는데 1시간이상인 것이 다반사이다. 아직도 많이 남았다고 한들, 가깝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묻는 사람이 듣고 싶은 것은 얼마 남지 않았고 길이 평탄하다는 위안의 말일뿐..

 

등산로를 약간 빗긴 진입로는 비교적 다닌 사람들이 적어서 그런지 자연석 돌게단 사이로 풀들이 우거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겼다.

바위 사이에 끼워 놓은 것 같은 석굴암은 정말 좁은 대지 위에 세워져 있다.

사진을 제대로 찍기 힘들 만큼 경내가 좁다.

보통 사찰에 가면 스님들 뵙기가 힘든데 이 사찰은 법당과 종무소가 한 공간에 있고 요사채가 바로 붙어 있어 드나 드는 스님들을 많이 뵈었다. 어디 갈데가 없는 암자이다.

 

좁은 석굴 법당 앞 마당에 꽃을 심어 나비가 많이 날아 들고 있었다.

법당 앞에서 내려다 보는 서울 시내 전경은 고해의 바다가 아닌 '아파트의 바다'이다.

석굴 법당 위에 세워진 큰(?) 법당에 가니 그 작은 공간에 약사여래와 산신탱, 독성탱이 모셔져 있다. 산신탱은 두개나 있었다.

 

올라갔던 계단을 내려 오는 길은 좀 무서웠다.

힘든 계단을 오를 때는 위를 쳐다보지 않고 오직 다음 계단 만을 보고 한발짝 한발짝 움직여 전체적인 모습을 잘 보지 않기에 얼마나 가파른지 잘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려 올 때는 눈 앞에 펼쳐진 경사가 공포심을 준다. 더구나 의지처인 난간이 흔들릴 때 그 공포는 더 커진다.

 

올라 갈 때 그 힘들었던 길이 내려 올 때는 수월하다. 그제사 올라가는 사람들을 걱정하며 내려 오면서 보니 도봉서원 복원지 앞 계곡 바위에 '고산앙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음이 눈에 들어 온다.

올라 갈 때는 올라 가야한다는 압박감에 눈에 들어 오지 않았나보다.

숙종 때 씌여진 글씨인데 글씨가 물에 잠겨 있다. 아마도 오랜 세월 동안 바위가 움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 시간 30분 포함해서 총 5시간 30분을 걸었다. 나름대로 힘든 산행이었다.

 

 

 

 

 

 

 

 

 

나무의 뿌리가 바위를 쪼개고 있다.

 

 

일주문 없이 문패가 서 있다.

일주문을 세울 자리 조차 없다.

 

야외 부처상, 명호와 모양이 맞지 않은 것도 있다.

 

역시 사찰은 뒤에 멋진 봉우리가 있어야 그림이 완성된다.

 

 

새로 조성한 듯한 후불탱, 오래된 후불탱들은 치우지 않고 대웅전과 독성각에 나누어 모셨다.

 

옆면으로 밀려 난 옛 탱화들

 

 

우물 반자가 높게 만들어져 있어 공간감이 확대되었다.

 

대웅전 뒤의 석굴

 

산신각, 마치 성을 쌓은 것 같다.

 

 

독성각, 매우 화려하다.

 

독성각 안에 오래된 약사여래탱을 모셨다.

 

 

대웅전 뒤의 축대, 연화좌 일부분이 보인다. 어떤 용도였을까?

 

 

갈림길

 

카페

 

 

풍화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듯한 돌 계단

 

 

 

석굴법당, 종무소도 겸하고 있다.

 

나비

 

서을은 '아파트의 바다'이다.

 

법당

 

약사여래

 

무서운 계단

 

 

고산앙지, 물에 잠겼다.

 

도봉서원 조감도,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 않았다.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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