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미당 서정주 시인의 기념관에 갔다.
마침 문학 페스티벌을 하는 날이지만 참여객이 너무 적어 지나가는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다. 미당 서정주를 주제로 남들 다 하는, 노래하는 축제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문학 캠프를 여는 것이 어떨까? 폐교를 활용했기에 세미나 실 같은 공간은 충분하다.
내가 주제넘게 걱정할 것은 아니지.....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축해서 만든 기념관에는 생전에 미당이 쓰시던 장롱부터 전기요금 영수증까지 다 모아 놓았다. 아들들의 우등상장 까지도...
전기요금 영수증에 내 이름이 써 있는 것은 쓰레기통으로 가지만 유명인의 이름이 써 있는 것은 기념관에 간다......
기념관 한 방에는 미당이 그동안 쓴 시를 액자로 만들어서 죽 걸어 놓았다. 그 시를 읽으면서 미당 생애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유명한 ‘국화 앞에서’도 있다. 정화수 더 놓고 남편이 바람피지 말라고 기도했다던 아내에 대한 시를 읽으면서 미당이 바람둥이였었나 하는 추측도 해 본다.
충격적인 것은 미당이 일제시대 때 쓴 친일시와 제5공화국 때 전두환 전대통령을 찬양하는 시까지 걸려 있다는 것이다. 정말 충격적이다. 처녀 귀신 가면 없이도 사람을 이렇게 놀랠킬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보통 유명인의 기념관이란 찬양 일색이다. 그런데 이 기념관에는 본인이 감추고 싶은 치부까지 다 드러내 놓고 있다. 누가 어떤 의도로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냈는지 모르지만 ‘피 뚝뚝 떨어지는 날고기’ 같은 느낌을 준다. ‘비겁’이란 단어가 공중을 휘몰아치고 있다. 나는 미당에 대해서 잘 모르며 그의 친일 행각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내가 미당의 위치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비가 종이었다고 고백하는 사람에게 조선은 어떤 나라였을까? 자신의 아비가 같은 민족 취급을 받았다고 생각할까? 조선의 양반이든지 아니면 일본인이든지 어차피 핍박하는 존재이기에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에게 조선은 목숨 바쳐 지켜야 할 나라가 아니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5공화국 때의 시를 읽는 내 마음은 정말 절망적이었다. 역겨워서 끝까지 읽을 수도 없었다.
나 같은 40대에게 제5 공화국은 지금도 객관적으로 사고 할 수 없는 상처이다.
일제 시대 때에는 어려서 판단이 바로 서지 않았다하더라도 (아니면 더 이상 조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감이 있었다 하더라도-친일 지식인들의 일반적인 변명) 제5공화국 시절에는 자신의 ‘경력’을 관리해야 할 지긋한 나이가 아닌가? 미당 정도의 위치면 자신의 사후 경력까지 관리해야 하는 사람 아닌가. 미당의 생애와 작품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보물 찾듯이 샅샅이 뒤질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나? 미당 같은 사람들의 생애는 더이상 개인적인 삶이 아닐 것이다. 그런 유명인에게는 지켜져야 할 프라이버시라는 것이 없을 것이다. 다 뒤져서 알아낸다.... 그들의 뒤에는 굶주린 하이에나들이 항상 있다.
그러나 그 또한 사정을 잘 모르니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총구 앞에서 쓴 시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럴 때는 정말 그 재주가 저주이다.
그러나 미당의 기념관에서 ‘피 뚝뚝 떨어지는 날고기’ 같은 교훈은 잊고 싶지 않다.
유명인들, 특히 정치인들에게 꼭 한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처음 인상에 그저 그런 기념관이었던 미당 기념관..
뒤돌아 나오는데 섬뜻한 기분이 든다. 정말 강력한 가르침이다.
렘브란트의 푸줏간 그림이 떠 올랐다.
Rembrandt. The Slaughtered 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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