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여행

20110612 4. 경기전

gotemple 2011. 6. 13. 06:42

http://themesaytour.tistory.com/289

전동성당을 둘러보고 길건너 경기전으로 갔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전국 주요 지점에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서 걸어놓고 경배하게 했다. 아마도 왕조가 바뀌었음을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고 자신의 역성혁명을 기정사실화하고 싶었나보다.

요즘 같이 영상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옛 시절의 정치적 프로파간다일 것이다.

아주 오래 전에 ‘로마인 이야기’에서 읽은 로마 황제들의 동상들과 동전이 생각났다.

조선에서는 ‘감히’ 임금의 얼굴을 동전에 새겨 넣어 백성들이 문지를 수 있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선시대 ‘어진’은 임금 그 자체였기에 어진을 거는 본전은 임금의 침실이나 마찬가지였고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500년 동안 경기전은 전주 이씨들에게는 자신들의 사회적, 정치적 위치를 견고히 해주는 하나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제례를 지내는 제관들 사이에서의 자리 암투는 500년 동안 계속되었고 지금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 것 같다.

같은 초상화인데 그 존재의 의미는 시대마다, 지역마다 너무 다른 것 같다.

르네상스 시대 네덜란드에서 초상화는 ‘부의 상징’이었다. 신교도의 엄격하고 검소한 생활에 대한 규제 때문에 그나마 자신의 부를 자랑할 수 있는 방법은 ‘흰 레이스 달린 옷을 입고 그린 초상화’를 집에 걸어 두는 것이었다.

경기전은 본전 만이 사적이고 오랜된 건물이지만 현재는 부속 건물이 많이 들어섰다.

본격적인 ‘관광단지화’ 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속건물들은 얼핏 보면 이것저것 많은 것 같지만 아줌마의 눈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준비 공간(제사음식만들어 보관하고 제기 보관하는 곳)과 경비 인력이 상주하는 공간으로 분류된다. 집에서 늘상 하는 제사 준비를 좀 넓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경기전을 가기 전에 이 공간(단지 건축물뿐만 아니라 건축물과 담장이 만들어 내는, 이른바 제례를 위한 신성한 공간)에 대한 책을 읽고 갔는데 마침 일요일이고 행사가 있어서 경기전은 경건하고 신성한 공간이 아니라 떠들썩한 시장 바닥과 같은 공간이 되어 버렸다.

제향을 준비하는 넓은 마당은 꾕과리와 장구, 퉁소의 소리로 가득했다.

아마도 한옥마을에서 이렇게 사람들이 어우려져 행사를 치를 만한 공간은 경기전 밖에 없기에 여기서 행사를 하는 거겠지만 과거에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시끄러워 태조가 영면하지 못한다고 향교를 멀리 쫓아보냈던 그 기백은 어디로 갔는지....

전주 이씨 종친회가 경기전을 개방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궁금했다.

향교에서는 아직도 대성전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현재 본전에 있는 태조어진은 새로 모사한 것이고 고종 때 만든 이모본은 새로 지은 어진 박물관으로 옮겼다.

경기전의 대밭이 멋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장구 소리와 북적대는 사람들 때문에 대밭의 고요한 정취를 느낄 새도 없었고 쫓기듯이 경기전을 둘러 보고 나왔다.

언제 평일에 한번 와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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