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서원은 논산에 위치한 서원으로 예학의 시조인 사계 김장생, 신독재 김집,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을 배향한 서원이다.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시대를 지배하는 이념으로 사용된 예학의 논리를 완성한 분들을 집대성하였다.
사찰은 긴 세월 동안 많은 분들이 거쳐 간 곳이라 뛰어난 인물이 계셨던 사찰이 아닌 경우 특정 시대나 인물보다는 자체 건축물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서원은 특정 인물을 배향했기에, 그리고 건축물은 단조로와 건축물 자체보다는 배향된 인물들에 더 주목하기 마련이다.
돈암서원을 가면서 그 시절 잘나갔던(?) 분들의 일생을 빼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예학'이 통치 철학으로 적절했는가에 대한 평가보다는 어쨌든 그 시절 통치철학이었다는 팩트에 주목하여 역사적 사실은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주자학이 김굉필, 조광조, 이이, 김장생, 김집, 송시열을 거치면서 근본주의에 가까와지면서 조선왕조는 점점 경직된 사회가 되어갔다. 임진왜란에 호되고 당하고 호란을 겪으며 훼손된 국가적 자존심을 내부 단속을 통해 찾으려한 것 같다. 어떤 철학이던지 근본주의가 판치면 사회가 힘들어지고 폐쇄적이 되어가며 기득권자들만 득세하게 된다. 역사에서 if란 없다지만 이들이 조금만 융통성이 있었다면 조선 왕조는 그런 식으로 막을 내리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서원의 배치는 좀 두서가 없어 보인다. 역사를 보니 고종 말기에 홍수 때문에 다른 곳에서 옮겨 오고 나중에 또 옮겨 온 것도 있다. 사당인 숭례사 앞에 있어야 할 강당이 좌측으로 빗겨져 있고 강당 자리에는 김장생이 생전에 지었다는 서재인 양성당이 들어서 있다. 고종 시기에 이미 교육의 목적은 사라지고 제례의 목적만이 남았었음을 추측할 수 있겠다. 양성당 앞에는 홈페이지에 없는 동재와 서재가 지어져 있고 외삼문인 입덕문 앞에 루가 서 있다(다른 서원들은 루가 외삼문 안에 있다.). 최근에 급히 서원의 구색을 맞추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예전 자리에 있다가 뒤늦게 인조 때 건물이라는 것이 발견되어 옮겨온 강당(응도당)은 서원 건축치고 꽤 화려하고 위엄이 있다. 맞배지붕이지만 측면에 눈썹지붕이 있고 공포는 주심포 양식이며 화반이 있다.
자갈깔린 너른 마당에 심어진 두 그루의 나무와 반듯반듯 이어진 한옥들, 그리고 둘레를 감싸고 있는 기와 얹은 돌담들.... 텅빈 마당과 단청없는 단아한 한옥에서 청빈함을, 둘러싼 담장에서 완고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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