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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8 DDP 키스 해링전 1

gotemple 2019. 1. 8. 19:30

나의 서양화에 대한 관심은 딱 인상파까지 이다.

그래서 인상파 이후의 그림은 잘 보지 않았다. 피카소나 그외 아주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상식적으로 보는 정도 이다.

키스 해링은 미국의 현대 화가로서 이른바 하위문화인 낙서를 주류 미술계로 끌어 올린 화가이다.

그의 그림을 간간히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대대적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의 그림은 비록 낙서로 시작되었지만 사실 현대 실내 인테리어에 잘 맞는 화풍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도 나타나 있듯이 앤디 와홀로 대변되는 팝 컬쳐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1990년에 32세로 에이즈로 사망했다.

1990년대 초기는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 문화가 정점으로 치닫던 시절이다. 즉 세계2차대전과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미국이 경제의 중심이 되고 20세기 초 유럽에 뒤쳐져 있던 문화 패권도 어느 정도 가져 온 상황이었다.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어 명실 공히 판아메리카나를 이룬 시절이다.  그들은 그들의 시기가 문화의 정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와 인터넷의 세상이 오기 직전의 상황이다.

그가 컴퓨터와 인터넷의 세상, 가상 현실의 세상을 보지 못하고 죽은 것이 안타깝다. 충분히 볼 수 있었던 나이었다. 그가 인터넷과 가상 현실을 경험했다면 또 다른 형태의 작품이 나왔을 것 같다.


이 전시회를 보면서 나의 20대를 생각했다. 제5공화국의 암울한 시절 때 20대를 보낸 나는 당시 이런 화가가 있는 줄도 몰랐다.

당시에 그림보러 다닐 경제적, 정신적 여유도 없었다. 팝 컬쳐의 앤디 와홀까지는 여디선가 흑백 사진으로 알고 있었지만 해링은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외국여행 하기도 힘들었고 공영방송의 뉴스외에는 외국 소식을 듣기 힘든 시절이었다.

참 힘든 시기였던 1980년대에 태평양 건너 미국은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미술은 들어 오기 힘들었지만 음반은 꽤 들어 왔는데 정식 음반보다는 길거리 리어카 테이프가 판을 치고 그것도 모자라 집에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들을  테이프로 녹음하던 시절이었다. 해링의 음반 자켓을 보면서 당시의 기억이 떠 올랐다.



키스해링 설명 : https://ko.wikipedia.org/wiki/%ED%82%A4%EC%8A%A4_%ED%95%B4%EB%A7%81 (한글)

                      https://en.wikipedia.org/wiki/Keith_Haring (영어)




전시실 밖 복도에 포토존과 기념품가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