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에 봉은사에 들린 적이 있었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갔기에 절의 분위기를 만끽하기보다는 아이들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에 더 신경을 써서 사실 절 자체에 대해서는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뿐....
오랫만에 시간이 나서 혼자서 삼성동에 가는 길에 들렸다.
일요일이라 신자들 뿐만 아니라 관광객으로 붐볐다.
절입구에서 만나는 첫문은 진여문이다. 일주문도 아니고 천왕문도 아닌 진여문인데 문 양쪽에는 사천왕상이 있다. 보통 산중 사찰의 천왕상은 나무 난간 뒤에 먼지가 뽀얗게 앉은 상태로 있기 마련인데 이 절의 사천왕상은 유리 문 안에 들어 앉아 있으시다. 전각의 공포에도 빈틈없이 그물망이 쳐 있다. 새들과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않겠다는 굳은 결의가 느껴진다.
진여문을 지나니 넓은 계단 위에 법왕루가 보인다. 계단 왼쪽 부분에는 작은 화단과 흘러 내리고 있는 계곡물(?)도 보인다. 화단에는 진달래 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저 계곡물이 청계천과 마찬가지로 보기에는 근사하지만 수도물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거다.
법왕루(1997년)는 내가 본 사찰의 대웅전 앞 루 중에서 가장 큰 전각이다. 정말 크다. 웅장한 기와지붕을 보고 있자면 종묘에서 느꼈던 '거대함'을 느낄 정도이다. 루 밑은 종무소로 사용되고 있고 루는 주요 법회 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법왕루의 문살도 매우 화려하다. 비교적 최근에 지은 건물이라 할 수 있는 '장엄'은 다 넣은 것 같다. 법왕루 안에는 관세음보살상을 모셨다. 작고 큰, 수 많은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법왕루를 지나니 가려져 있던 대웅전이 보인다. 마침 부처님 오신날을 위한 연등 때문에 대웅전을 멀리서 한눈에 볼 수 없었다. 웅장하고 잘 지은 전각이다. 이 역시 최근 전각(1982년)인데 편액만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안에 모신 부처님이 삼존상이니 '대웅보전'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 그냥 '대웅전'이다. 아마도 화재로 여러번 중수 했기에 추사 시대에는 부처님 삼존상이 아니라 그저 협시보살님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편액의 대웅전의 전殿자의 왼쪽 수직선이 일반적인 것보다 짧고 수직에 더 가깝다. 추사가 돌아가시기 3일 전에 쓴 글씨라고 한다. 기교는 사라지고 그저 알맹이만 남은 느낌이다.
대웅전 안 왼쪽에는 감로탱화가 걸려있고 왼쪽에는 신중탱화가 있다. 사찰에서 대웅전 안에 있는 감로탱화는 처음 본 것 같다. 오랜 된 사찰의 감로탱화는 주로 박물관에 있기 때문이다. 대웅전의 역사로 보아 오래 된 그림은 아니겠지만 조선 후기 양식을 충실히 따른 것 같다.
대웅전이 워낙 크니 (얼마 전 다녀온 전등사와 너무 비교 되었다.) 왼쪽 감로탱화 앞에서는 어느 분 49재를 하고 있고 오른쪽 부분에서는 일반 신도들이 절과 기도를 하고 있었다. 서로 아무런 마찰없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을 열심히 하고 있다.
대웅전을 나오니 옆에 지장전이 있는데 내가 본 지장전 중에서 제일 컸다. 2003년에 다시 지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웬만한 사찰의 대웅전만 하다. 그곳에도 49재가 있는지 통제되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대웅전 뒸족으로 영산전이 있다. 부처님 제자들의 목상과 탱화가 모셔져 있는데 나름대로 괜찮았다. 이 사찰에서 그래도 오래 된 전각 중의 하나이다. 영산전 옆에는 북극보전이 있는데 다른 사찰에서의 칠성각이다. 굉장히 작고 앙증맞다. 봉은사는 전각의 이름이 좀 특이한 것 같다. 진여문, 북극보전 등등
북극보전을 지나니 미륵대불이 보인다. 역시 최근(1996년)에 완성된 곳이라 현대 건축의 웅장함을 보여 준다. 양쪽에 있는 석등 또한 웅장하다. 한바퀴 돌고 나왔다.
미륵대불 앞에는 미륵전이 있는데 예전에 법왕루 자리에 있었는데 이리로 옮겼단다. 일반적인 사찰의 전형적인 루 형태이다.
미륵대불을 지나니 판전이 눈에 꽂힌다. 딱 보아도 좀 오래된 전각처럼 보인다. 맞배지붕에 측면은 높이 1/3 정도로 돌로 외벽을 쌓았다. 판전이라 측면과 후면에 는 여닫이 통판문이 있다. 아마도 가끔 열어서 환기를 시키는 용도인 것 같다. 문 사이로 들여다 보니 촘촘히 꽂힌 판각이 보인다. 이 판전의 편액도 추사 김정희가 썼다는 데 '전'자가 대웅전의 전자와 마찬가지로 독특하다.
판전을 지나니 범종각이 보인다. 안에 있는 종은 평범한 종인데 1970년 대 종이다. 주소까지 종에 새겨져 있는데 당시에는 삼성동이 강남구가 아니라 성동구였나보다. 종각은 단청이 벗겨져서 이 절에서 그나마 고풍을 간직하고 있는 전각이 되었다.
범종각 옆의 새로 지은 듯한 종루는 너무 현란하다. 종도 너무 크고 단청도 너무 화려하다. 더 실망스런 것은 종루 밑 기둥이 시멘트라는 것.... 이왕 돈 쓰는 김에 화강암으로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경을 하다보니 2시부터 108배를 한다고 해서 나도 함께 절을 했다. 108배 하고 나오는데 하늘이 노랗고 제대로 계단을 내려 오기 힘들었다.
도심 사찰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관광객들도 꽤 있는 것 같았다. 법왕루를 지나 밖으로 나오는데 진여문 밖으로 코엑스의 거대한 유리 건물이 보였다. 여기가 산이었을 때를 상상해 보았다.
법정스님께서 예전에 이 절에서 '무소유'를 쓰셨다는데 그 때의 봉은사는 이 절이 아닌 것 같다.
진여문 밖으로 나오니 왼쪽에 '산중다원'(산중 사찰에는 이 이름의 찻집이 꽤 있다.) 있는데 그 이름이 무색했다.
이 절이 이른바 현대화의 거대한 물결에 언제까지 저항할 수 있을까? 아니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코엑스몰이 재개발 된 후에도 그저 묵묵히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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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판전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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