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20141031 1. 성균관 문묘와 명륜당

gotemple 2014. 11. 1. 04:32

성균관 대학교는 25년전 쯤 가보았고 문묘와 명륜당은 답사를 시작하면서 시간나면 언제 가 보아야지 마음만 먹고 있었지 지금까지 가 보지 못 했다. 가까운 곳은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일부러 마음을 내서 가지지 않는 것 같다.

부지런하지 못해 비록 이 가을날 창덕궁 후원 단풍 구경을 예약하지 못했지만 예약없이 갈 수 있는 창경궁과 문묘를 가기로 했다.

 

성균관대학에는 대학참관수업을 하러 온 중고생들로 붐볐다. 나도 중고들학교 때 대학 구경을 하러 갔지만 볼 수 있는 것은 캠퍼스 분위기와 건물 뿐이었다. 이 대학에 온 아이들에게 문묘와 명륜당은 다른 대학과는 다른 사진 찍는 배경을 줄 것 같다.

나는 그 나이 때에 문화재나 문묘, 한옥에 관심없었다. 그 아이들에게 비록 참관수업이 수업 쉬고 친구들과 수다떨고 사진 찍는 찍는 시간일 뿐일지라도 그들의 사진 파일에 즐거운 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문묘는 조선시대 통치이념인 성리학을 가르치는 기관이며 지방에 있는 모든 향교의 본점인 만큼 간결하면서도 품위 있는 건축물과 조경, 배치들을 보여준다.

모든 전각들이 장식을 최대한으로 배제하고 간결하게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공자를 모신 대성전은 다포형식인데 동시대(임진왜란 이후)의 화려한 불교사찰과는 달리 장식이 간결한 형태의 공포로 만들었다. 마치 고려시대나 조선초기의 공포처럼 보인다. 봉정사의 대웅전과 비슷하다.

건축물만 본다면 조선시대에 불교가 박해를 받았다는 것을 알수 없다. 물론 지금 우리가 보는 불교사찰건축물들은 임진왜란 이후 박해가 좀 느슨해진 이후의 건축물이라는 것도 원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지배 이념을 나타내는 공자의 사당마저 간결하게 지은 것을 보면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물질문명을 심하게 싫어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명륜당 양 옆에 있는 동재와 서재는 지방과는 달리 학생들이 쉴 수 있는 마루와 드나드는 문이 명륜당 중앙마당 쪽이 아닌 반대쪽으로 나 있었다.

아마도 그 마당은 일상 쉼의 공간이 아니라 제식이나 공식적인 공간이었나보다.

동재와 서재의 건축에 많은 생각을 하고 지은 것 같다. 치밀하게 학생들의 생각과 행동을 제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묘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3,01430000,11

은행나무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6,00590000,11

문묘, 성균관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1410000,11

 

 

글쎄 조선시대 성균관과 지금 성균관대학과의 역사적 연계성은 위치 정도라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 교과서에서 본 생각이 났다.

 

 

 

 

 

대성전, 임진왜란 이후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공포는 다포이기는 하지만 고려후기나 조선 초 스타일이다.

 

기둥의 흰색은 여기가 지상세계가 아닌 천상세계임을 나타낸다.

왕릉의 정자각에 가면 이런 기둥을 볼 수 있다.

흰색 하나로 천상과 지상을 구분하다니 대단한 은유이다.

 

 

 

대성전에서 본 삼문

 

계단도 간결 그 자체

계단과 계단 사이에 동그란 돌은 무슨 의미일까?

 

왼쪽은 묘정비각

 

서무

동무

 

 

동무쪽 은행나무, 이곳의 나무들은 임진왜란 이후 문묘를 중건하면서 심었다고 한다.

수령 400년 쯤

 

동무쪽 은행나무 밑둥, 원래 하나의 나무였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크다.

 

서무쪽 은행나무

 

수복청과 전사청

 

수복청, 문묘를 관리하던 사람들이 기고하던 곳

 

제기고, 제기두는 곳, 기둥마다 제기 구분이 되어 있다.

 

전사청, 제사음식을 만드는 곳

 

 

지방 향교의 명륜당보다 우람하다. 양쪽에 스승님이 기거하는 방이 있다.

중앙에는 경복궁처럼 월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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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긴장감이 감돌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관람객이 쉬어가는 곳이 되었다.

 

 

동재

 

서재, 창문이 중앙 마당 쪽으로 나 있다.

 

명륜당 맞은 편 은행나무, 약 400년쯤 되었다고 한다.

 

대성전 후면

 

 

은행나무 사이로 본 명륜당

 

 

 

존경각

 

육일각

 

 

진사식당, ㅁ 자 건물이다.

진사식당과 마주보고 있는 동재의 후면

이곳으로 학생들이 방을 드나들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학생들이 앉아 책을 보고 있다.

 

양쪽으로 긴 건물이고 후면으로 방을 드나드는 구조라 중간중간에 마당으로 향하는 문을 달아 단 시간내에 학생들이 마당에 모일수 있었을 것이다.

 

중앙 마당으로 향한 문 앞에도 마루를 깔아 신을 벗지 않고 각방을 갈 수 있게 했다.

 

 

 

 

향관청

 

 

 

향관청 앞의 방들도 문이 마당 반대쪽에 만들어졌다.

 

 

심간문 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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